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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2) 회피형 인간에 대해서

러비너프 3년전

 


 

5장. 회피형 인간의 직장 생활 - "왜, 만사가 귀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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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에서도 대인관계가 과제​

  애착 성향이 안정된 사람은 가까운 사람과 신뢰관계를 잘 맺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좋은 인상을 품는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실제 조사에서도 애착 성향이 안정된 사람은 일의 만족도나 사회적 지위가 높고, 일에 감정적인 부분을 끌어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안정된 애착 성향은 직업 세계에서의 성공도 담보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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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분명하게 선을 긋는 근무 방식 ​

  불안형 인간은 업무 영역에서도 끊임없이 불안정한 애착 문제가 발생한다. 일에 대한 문제가 그것 자체로 머무르지 않고, 상대방에게 인정받았는지, 마음에 들었는지 하는 인간관계의 문제로 변환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과도하게 상처받거나 지치기도 하며, 사소한 질책이나 주의도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한편 회피형 인간은 일은 일로써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경향이 강하므로 일에 대인관계나 정서적인 문제가 끼어드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일은 잘하지만 인간관계가 표면적이기 때문에 인맥 형성이나 관리의 측면에서는 어려움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거나 다른 사람이 기뻐한다는 것. 회피형 인간은 이런 걸로 동기부여되지 않는다. 회피형 인간이 봉사 활동이나 이타적인 활동 영역에 종사하는 일이 드물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봉사 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이름을 알리거나 사회적 평판을 얻기 위한 이기적인 목적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해타산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직장의 질서에 적합한 측면도 있다.

  회피형 인간 대부분은 쓸쓸히 자신의 세계에 틀어박혀 편안함과 만족을 느낀다. 일을 하면서 팀워크나 협력, 배려 등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오히려 불쾌하게 느끼기 때문에 곧바로 의욕을 잃는다. 자신의 리듬에 맞춰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게 이상적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잊고 일에만 몰두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너무 일에만 열중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여 어느새 직장에서 고립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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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배제하는습관​

  미국의 정신분석가 로젠츠바이크가 개발한 PF스터디(Picture Frustration Study: 회화욕구불만검사)는 욕구불만을 일으킬 법한 장면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상대방의 말에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검사에서는 피험자의 대답을 공격적인 성향과 그 유형을 기준으로 분석한다. 공격적인 성향이란 말 그대로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주장 같은 요소까지 광범위하게 포함한 개념으로 봐야 한다.

  이 검사는 공격하는 유형에 따라 장애 우위, 자아 방어, 요구 고집 등의 세 반응으로 나뉜다. 장애 우위 반응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대처하지 못한 채 곤혹스러워하거나 망설이면서 시간을 끄는 반응이다. 자아 방어 반응이란, 상처받은 것이나 상처 입힌 것에 대한 반응인데 그것이 타인을 향한 벌의 형태를 띠면 비난과 분노의 반응으로 나타나고, 자책의 형태이면 사죄나 반성의 말로,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을 때는 체념이나 깨달음의 말로 나타난다. 

  요구 고집 반응이란, 피해에 대한 변상이나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는 반응인데 타인을 향하면 대책을 요구하고, 자신을 향하면 타협이나 약속을 하고, 둘 다 아닌 무책임한 반응의 경우에는 중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회피형 인간을 대상으로 이 검사를 한 결과 요구 고집 반응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무책임 반응이 가장 높았다. 한편 자아 방어 반응은 그리 많지 않았다. 타인을 질책하는 반응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자책과 반성을 하는 반응도 부족했다. 감정을 배제한 채 객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언뜻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반드시 효과적이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 자체보다 그것에 의해 상처받은 마음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갑자기 냉정하게 문제 해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자신의 기분 문제는 어떻게 해줄 거냐고 따지게 된다.

 또한 원칙대로라면 화내도 될 상황에서도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담담히 문제 해결 단기로 진행해가다 보면 상대와의 협상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대인 관계에서도 화를 내지도 공격하지도 않다 보면 상대방이 우습게 여겨서 부당한 공격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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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깨닫고 보면 고립​

  정서적인 부분에서 무반응으로 대응하는 특징은 종종 집단 내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회피형 인간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난감한 부분이다. ​

  일적인 부분에서는 늘 노력하고 혁혁한 업적을 올리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배려하는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호감도가 낮을 수 밖에 없어서 평판이 좋지 않다. 뒷말을 듣거나 실력 이하의 평가를 받는 일도 흔하다. 회피형 인간의 능력을 속속들이 잘 파악하는 상사가 없다면 머지않아 직장 내에서 고립되고 일에서도 궁지에 몰리기 쉽다.

  회피형 인간은 안전기지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사회생활에서도 그럭저럭 적응할 수 있지만 스스로 안전기지를 찾아내고 만들어가는 융통성은 없다.​

  회피형 인간이 직장에서 직면하는 또 한 가지 어려움은 일 이외에 '잡일'과 관련된 부분에서 발생한다. 기술적인 능력이나 일 자체에 대한 능력은 높은데, 그것에 수반되는 뒤치다꺼리나 관리 업무에서는 좌절하고 마는 것이다. 특히 사무처리 능력이나 관리 능력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에는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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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함과 전문성이 강점​

  회피형 인간은 인간관계에서 득점을 쌓아 자신의 평가를 올림으로써 살아남는 전략은 쓸 수 없다.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전문적인 기능이나 실력뿐이다. 그래서 회피형 인간 중에 성공한 사람은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더 일에 엄격하고, 높은 기술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누구도 참견할 수 없을 만한 기능과 지식, 능력을 보이지 않으면 자신이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타협하지 않고 실력을 키우는 사람이 많다. 

  정서나 연고에 좌우되지 않는 회피형 인간의 냉철한 일처리는 오늘날의 비즈니스 감각과 잘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회피형 인간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회피형 인간의 특징을 갖고 있는 사람쪽이 관리직이나 경영자로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회피형 인간에게 성공의 열쇠는 충분한 전문적 기능을 익혀, 그것에 관해서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특성을 활용하며 일하는 것이다. 반대로 가장 불행한 업무 형태는 자신의 전문 영역과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나 주변 사람들의 상황에 맞춰야 하는 분야나 잡다한 업무 영역에 신경을 소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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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겠다고 말하기보다 조용히 사라진다​

  회피형 인간이 책임있는 지위에 오르거나 도망칠 수 없는 부담을 떠안게 되었을 때, 시련이 찾아온다.​

  회피형 인간은 불평이나 불만도 늘어놓지 않고 묵묵히 일에 매달려 맡은 만큼 확실한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으므로, 좀 더 부담을 늘려도 어떻게든 해내지 않을까, 관리 분야의 일도 잘 해내지 않을까 하고 윗사람들이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실은 계속해서 한계까지 겨우겨우 버텨온 것에 불과한데 아직 여유가 있구나 하고 오해하는 것이다.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양의 일을 떠맡고도 못하겠다는 말도 못한 채 이를 악문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으로 극복하려 해도 한계가 있다. 몸이 먼저 비명을 지른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거나 두통, 위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도 계속 무리하면 결국 실이 끊어지듯 몸을 꼼짝도 못하게 된다. 머리도 몸도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바로 우울증이다. 이런 일은 책임감이 강한 강박성 인격 장애와 회피형 애착 성향이 겹친 유형에게 잘 나타난다. 

  진지하지만 별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 중에는 이런 유형이 많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아무리 궁지에 몰리더라도 '일을 줄여주십시오'라거나 '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면 회사나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며, 그런 자신이 사라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못한다는 말을 할 거면 차라리 도망치자고 생각한다. 부담을 줄여달라거나 휴가를 보내달라고 말할 거면 자신이 죽어 없어지는 편이 낫다고까지 생각하고 만다.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회피형 인간의 특성이 강한 의무감이라는 특성과 결부되었을 때 점점 막다른 골목길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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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인생에 대한 무관심​

  회피형 인간을 대표하는 특징이 무기력, 무관심, 자포자기이다. 자신의 문제인데 왠지 남 일처럼, 무덤덤한 태도를 취하거나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자포자기의 자세를 보인다. 살려고 하는 근본적인 의지가 없으므로 눈앞의 쾌락이나 흥미에서 임시방편적인 구원을 찾으려고 한다. 

  궁지에 몰릴 때까지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에조차 무감각한 것은 회피형 인간에게 이따금 나타나는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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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귀찮다​

  회피형 인간의 행동 특성 중에 또 하나는 모든 일을 귀찮아하는 것이다. 흥미 있는 것 외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을 최대한 피한다.  여기에는 '현상 유지가 제일 안전'하다는 위험 부담 회피 사상이 깔려 있다. 또한 회피형 인간의 무기력한 성향도 귀찮은 일을 피하는 행동을 가속화한다. 

  무기력이란 바꿔 말하면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헛되이 에너지를 사용하면 부족한 에너지가 더욱 줄어들고 만다. 현재 상황을 변화시키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회피형 인간은 에너지가 부족하므로 현재 상황에 문제가 약간 있더라도, 또는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현재 상황을 견디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회피형 인간의 경우 외부 자극이 부족해서 에너지 고갈을 초래한 측면도 있다. 마음의 에너지란 외부 자극과 내부의 심리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피형 인간에게 마음의 에너지가 부족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안전기지를 갖지 못한 채, 안심하고 세상을 탐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더욱 탐색 행동을 피하며 외부 자극을 줄이기만 하면 과거의 잘못을 답습할 뿐 마음의 에너지를 늘이는 일로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위험부담을 피하고 현재 상황을 유지만 하면 마음의 에너지는 점점 더 약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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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대한 두려움​

  회피형 인간의 마음에 에너지가 부족한 원인 중 하나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바로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이다. 이들은 목적을 향해 노력하는 일에 소극적이다. 목적의 실현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향도 있다. 도중에 어려움이나 장애물이 나타나면 더욱 포기가 빠르다. 실패했을 때 받을 마음의 손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실패하여 상처받을 거라면 아예 도전이나 노력을 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실패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면 자동적으로 도전을 피하려고 한다. 그리고 실력 이하의 지루한 선택지로 만족하고 만다. ​

  회피형 인간 중에서도 회피성 인격 장애인 사람은 '자신은 뭘해도 어차피 실패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생각은 부정적인 인식의 왜곡으로 연결된다. 실제로는 성공한 일도 몇 가지 실수한 사례만 떠올리며 실패했다고 단정 짓고 만다.

  이러한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사람 대부분이 '부모로부터 그다지 칭찬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유형의 부모는 강박적으로 자신의 높은 기준을 아이에게 들이대고, 해내지 못한 것만 찾아내 지적하면서 키우는 경우가 많다. ​

  이런 양육법을 쓰면 아이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꺼리게 된다.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게 제일 안전하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가 지적질을 당하거나 실패할 기회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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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기회에서 도망치기​

  회피형 인간에게는 출세나 성공의 기회조차도 책임과 부담이 늘어나는 짐으로 여긴다. 칭찬받거나 기대를 모으는 일이 중압감으로 다가와 모두가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실망하기 전에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한다. 

  회피형 인간의 전형적인 심리 중 하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불쾌해하면서도 거꾸로 칭찬받거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이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상대를 실망시키면 어쩌나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상대가 분명 호의를 품고 자신에게 접근해도 자신은 그런 좋은 평가에 어울리지 않으며 상대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의 뿌리에는 자신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가치관이 깔려 있다. 또 뭔가 의욕을 갖고 일을 했다가 훗날 그것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기 때문에, 애초에 발을 빼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일도,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기회도 스스로 과소평가하는 탓에 다 날려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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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운명을 타고나다​

  회피형 인간에게는 일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 집 안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기분 좋은 것이다.​

  생계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있긴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항상 싫은 일들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아무런 구속도 없이 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은둔 생활이나 출가하고 싶다는 마음도 갖고 있다.

  회피형 인간에게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가 작가이다. 사회에 나가 일하지 않고 상상의 세계에서 놀며 작품을 쓴 후 원고료나 인세를 받아 생활한다. 속박당하지 않고 자유롭다. 무엇보다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이미지가 작가라는 직업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회피형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것 자체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가능성을 시험한 것 자체가 회피로부터 한 발자국 걸어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로 나가는 것을 회피하더라도 가능성을 시험한다는 것 자체가 회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것이 사회의 기준과는 어긋난 일이라고 해도 오히려 그 자리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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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의 아이덴티티 찾기​

이노우에 야스시의 모라토리엄 기간​

  모라토리엄이란 '유예기간'이라는 의미이며, 본격적인 인생이 시작되기 전까지 중요한 것은 결정하지 않은 채 공중에 붕 떠 있는 듯 보내는 기간을 말한다. 중요한 결단이나 행동을 회피한다는 의미로써, 그것은 회피 행동의 한 형태이며 기간이 한정된 회피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한없이 계속되어 버리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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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토리엄이 과연 씨앗을 뿌리는 시기가 될 수 있을까?​

  모라토리엄 기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라고만 할 수 없으며 그것이 필요한 시기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 기간을 어떻게 쓰느냐이다. 

  현실의 자잘한 일들을 피하고 자신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가능성을 축소시키면 훗날의 열매는 기대할 수 없다. 내면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만한 작업을 시험하거나, 어느 면에서는 계속 회피하면서도 다른 면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면 그 시간은 파종을 위한 시간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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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카를 위기에서 구원해준 것​

  다만 모라토리엄이 성립하려면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한다는 회피형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적 기반이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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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식하는 삶​

  걸식은 그 자체가 수행의 방법이지만 원래 고대 인도 등에서는 수행승을 지원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정착되어 있었다. 보시를 행하는 측에도 공덕이 쌓이므로 양쪽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호혜적 구조였던 것이다.

  회피형 인간에게 '걸식하는 삶'은 매우 익숙하고 잘 어울린다. 이를테면 집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은 보통 친근한 누군가의 자비에 의지해 산다. 그것은 부모이기도 하고, 형제이기도 하고, 파트너일 수도 있다. 

  회피형 인간은 출가하거나 은둔 생활을 동경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 어딘가에 지금 존재하는 이 모습은 가짜라는 의식이 있다. 그러니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에 집착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현실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기에 믿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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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

  생산하고,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부를 늘여가는 삶의 방식에 비해, 걸식은 타인의 여유에 기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그것은 과분한 부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으로 사는 청빈 사상과도 연결된다.

  걸식하는 수행자들은 어떤 집 처마 밑에서 경을 외며 그 집안의 액운을 물리치고 슬픔을 치유하면서 보시에 대한 사례를 한다. 직접적인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안사람을 대신하여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깨끗한 생활을 함으로써 간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회피형 인간에게는 딱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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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모든 것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되었다 - "왜,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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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을 위한 과제​

  회피형 인간이 회피하는 삶의 태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를 구별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 어린 시절부터 굳어진 회피형 애착 성향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가 그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말 그대로 현실적인 문제에서 회피하려는 성향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회피형 애착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현실에 적응해서 성공한 사람에게는 회피형 성향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일수록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회피형 애착 성향은 완전히 바꿔야만 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특성 같은 것이며, 심리학적이라기보다 생물학적 성격을 띤다. 그 특성을 유지하면서 좀 더 안정도를 높여가면 된다. 이때 주변에서는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특성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안정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후자는 본인 스스로가 바꿀 수 있고, 또 바꿔야만 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도망만 치다 보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되돌리고 싶다면 회피하는 습관을 버려야만 한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회피형 애착 성향도 좀 더 안정적인 형태로 바꿔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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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를 합리화하는 사고방식​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려는 사람에게는 공통된 사고 패턴이 있다. 그중 하나는 "노력해봤자, 도전해봤자 어차피 나는 실패할 테니까 다 헛수고'라는 사고방식이다. 몇 번이나 실패하고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 경험을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 성공한 게 아무것도 없다, 해봤자 상처만 받는다고 말이다. 그러니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기가 서서 걸으려면 놀라울 정도의 노력과 도전을 반복해야 한다. 끈질긴 시행착오 끝에 겨우 획득하게 되는 능력이다. '뭘 하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잊고 있다. 잘 생각해 보면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실제로는 과감히 도전하여 한 가지 한 가지 행위를 가능하게 만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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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에서 벗어나는 첫걸음​

  회피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삶의 주체성을 되찾는다는 거와 거의 동의어이다. 그를 위한 첫걸음은 지금까지 피하기만 했던 문제와 마주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다. 그것은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서 피해서는 안되는 꼭 필요한 단계이다. 회피에서 벗어날 때는 반드시 이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것이 불만이나 분노, 절망 같은 것이라 해도 먼저 그것을 말하고, 자신이 상처받은 지점과 마주하는 것이 거꾸로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상처받은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탄하고 절망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작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동안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일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기에 회복의 열쇠가 있다. 과거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응하려면 과거의 부정적인 해석을 긍정적인 것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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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의 경우​

  회피에서 벗어나기 위한 핵심 과제는 자신이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바로 앞에 있는 문제와 직면해야 한다.​

  불안형 어머니와 회피형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융은 김나지움에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전환증상(과거에 히스테리라고 불림. 신체적 증상을 일으킴에 따라 심적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치는 행위로 '질병 이득'이라고도 함)을 앓게 되어 학교를 쉬게 되었다. 당시에는 완치가 안되던 간질로 진단받고 걱정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몰래 들은 융은 자신이 이대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융이 '이대로 괜찮은 걸까'하고 자신의 마음에 물음을 던지고 자신의 인생에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회복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융은 정신적인 증상이 고통에서 도망침으로써 생긴다는 것, 그러므로 그 고통과 마주하는 것 외에 진정한 극복은 없다는 것을 체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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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반전을 경험하다​

  회피형 인간의 심리 구조는 이중의 회피 반응에 의해 강화된다. 하나는 마음이 다친 상황에서 또다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방어 반응이다. 불쾌한 경험을 했을 때 누구나 이러한 회피 반응을 보인다. 다른 하나는 그다음 단계인데 회피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정신적 동요와 거부 반응이다. 

  이것은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다시 상황으로 뛰어드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융의 경우를 보면, 그는 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과 조롱을 받았던 상처를 갖고 있었고, 동시에 성적이 좋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열등감도 있었다. 그 때문에 또다시 상처받을 위험이 도사리는 학교에 가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발작 증상으로 나타나자 학교에 가지 않는 일이 정당화되었고, 결과적으로 회피 행위에 근거를 부여해주었다. 몸은 힘들어졌을지는 몰라도 바꿔 생각하면 상처받는 것을 피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므로 심신 발작 증상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주변 사람들이 억지로 학교에 보내려고 하면 발작 증세가 더욱 악화될 뿐, 아무런 성과도 없다.

  융은 어느 순간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오히려 자신의 가능성을 좁히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장면으로부터 도망치는 행동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외치며, 자신을 바꾸기 위해 결심했기 때문에 이중의 회피 장애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회피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필요하다. 힘든 현실이나 불안과 마주하는 공포보다, 인생의 가능성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커지다 보니 마음의 양상이 백팔십도 뒤바뀌는 것이다. 

  이런 마음의 전환은 소년 융의 경우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나기도 하고, 오랜시간 동안 서서히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급격히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경우에도 실제로는 마음속에 조금씩 조금씩 그런 에너지가 쌓이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확실히 자각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시간의 길고 짧음은 있지만 회피의 함정을 극복한 사람은 반드시 이러한 심리적 반전을 경험한다. '도망쳐봤자 별 수 없다', '아무리 불안해도 뛰어들 수 밖에 없다'라고 마음먹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동안 불안하고 무섭고 도저히 접근할 수 없을 것 같던 상황도 별거 아닌 걸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상황에 뛰어들어 보면 본인이 느꼈던 불안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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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없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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